第1个回答 推荐于2016-12-02
잊지 못할 추억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나의 담임 선생님은 오십이 넘으신 그 당시로는 할아버지 선생님이셨다.
3학년에 올라갔을 때 멋있거나 예쁜 선생님을 기대했다가 선생님을 보고
그만 실망을 했다.
어린이날 운동회 때 나는 ‘쪽지 보고 달리기’를 했다. 쪽지에 적힌
내용은 ‘아버지 손잡고 달리기’였다. 사실 나는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날 많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쪽
지를 들고 가만히 서 있는 나에게 선생님이 달려오셨다. 그리고 내
손을 꼭 잡고 뛰기 시작하셨다. 나는 놀랐지만 다른 생각을 할 사이
도 없이 뛸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열심히 달렸고, 그리고 1등을 했
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내 어머니께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은 제가 수영이 아버지입니다.” 선생님의 그 따뜻한 목소리에
내 눈에서는 눈물이 비 오듯 흘렀다. 아버지가 너무나 그리울 때였
기 때문에 선생님의 그 행동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추
억이 되었다.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그 때 내 손을 꼭 잡고
계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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这篇作文是 14届韩国语考试的范文。没有任何错误。题目是《难忘的回忆》
希望对楼住有所帮助。 另外这篇文章是400字左右。楼主根据自己的经历稍微改动一下,就可以成为一片600字的好作文了。
呵呵。希望这篇文章对楼主有所帮助。本回答被提问者采纳
第2个回答 2008-12-30
一天中午,家里只有我和爷爷俩人,奶奶去菜市场买菜了,爸爸和妈妈都去上班了,现在家里就好象一个大南瓜里面没有了南瓜籽一样,空荡荡的。我和爷爷因为感觉闷得慌,就准备一起收拾屋子。我发现了厨房冰箱里鸡蛋快没有了,就跑下楼去超市买鸡蛋。
超市里的东西虽然是应有尽有,但是价格太昂贵了。我拿过袋子,小心翼翼地装鸡蛋,心里祈祷着:千万不能有任何的差错呀。可是事与愿违,正当我在拿最后一个鸡蛋时,可能是由于心里如释重负,一放松,手一滑,手中的鸡蛋就如一块巨大的石头一般重重地砸在了另外一个鸡蛋上面,破天慌的,一块大石头无缘无故地砸在你的头上面,你还不得委屈死了?鸡蛋委屈,可是我也一样委屈,自认倒霉,我得赔钱呀。
于是,我就跑过去,去问售货员阿姨一个鸡蛋大概几元钱,她说:"一个鸡蛋大概五角钱吧。"我松了一口气,幸好我付了鸡蛋原来的钱还多剩下五角钱,真是不幸中的万幸呀,如果一个鸡蛋是一元钱的话,那我就是双悲临门哪。我告诉了给我结帐的那位阿姨,她也没有责怪我,只是让我赔了五角钱。回到家,爷爷问我怎么这么晚才回来,我告诉了爷爷那件事情,他说:"你呀真是太老实了,换成别人哪,没准还会贼人喊贼呢。"我在想:如果我当时没有赔那五角钱,可能现在我还在耿耿于怀,没准还会惭愧呢。
现在我又想到:何必呢,五角钱就能够换来一个"清白身"和一个"自由身"不是挺值的嘛,何必那么吝啬呢。老老实实地踏踏实实地过日子不是更舒坦的吗?最起码我是这么认为的。这件事使我明白了许多道理,令我难忘。
第3个回答 2008-12-30
잊지 못할 추억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나의 담임 선생님은 오십이 넘으신 그 당시로는 할아버지 선생님이셨다.
3학년에 올라갔을 때 멋있거나 예쁜 선생님을 기대했다가 선생님을 보고
그만 실망을 했다.
어린이날 운동회 때 나는 ‘쪽지 보고 달리기’를 했다. 쪽지에 적힌
내용은 ‘아버지 손잡고 달리기’였다. 사실 나는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날 많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쪽
지를 들고 가만히 서 있는 나에게 선생님이 달려오셨다. 그리고 내
손을 꼭 잡고 뛰기 시작하셨다. 나는 놀랐지만 다른 생각을 할 사이
도 없이 뛸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열심히 달렸고, 그리고 1등을 했
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내 어머니께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은 제가 수영이 아버지입니다.” 선생님의 그 따뜻한 목소리에
내 눈에서는 눈물이 비 오듯 흘렀다. 아버지가 너무나 그리울 때였
기 때문에 선생님의 그 행동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추
억이 되었다.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그 때 내 손을 꼭 잡고
계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20)년전, 부부라는 인연으로 만나 꽃다운 (26,24)라는 나이에 딸을 낳아 가족이라는 이름을 나에게 선물해주신 부모님. 그분들도 점점 늙어가고 계시다는걸 이 글을 쓰면서 깨닫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보통 가정의 전업주부로서 벌써 20년간 저와 아버지를 위해 살아오셨습니다.여느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쇼핑하기도 좋아하시고 저와 대화하는걸 특히 좋아하십니다.
가구 설계를 하시는 아버지는 무척 멋지신 분입니다. 외모도 출중하셔서 어렸을적 항상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가 무엇을 좋아하시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어머니가 아버지와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름답고 새로운 것들을 좋아하신다는것을요.
결국, 저는 도망치듯 한국으로 오게되었습니다. 그러나 혼자 타국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외롭고 조금은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이제서야 부모님이 나의 곁에 있어주시는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 사과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지금도 집에서 혼자 계실 어머니께 이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죄송해요.", 그리고 조금은 미웠던 아버지께도 한번도 하지 않은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누구에게나 그렇듯, 자신의 부모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분들이신가 봅니다.)
这两篇不错!选我!!^_^o(n_n)o
第4个回答 2008-12-25
잊을수 없는 일
아무리 긴 시간을 살아도 순간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배곯았던 시절, 한 그릇의 국밥을 말아주던 동네 할머니나 성적표를 몰래 고쳐도 모른 척 눈 감아주시던 아버지, 위험천만한 장난을 즐기고도 천진난만하게 웃어주던 동네 친구녀석들.. 그리고 그 그리운 순간에는 기억나는 소중한 일들은 잊을수 없어요.
그것은 초딩 수학여행때 있었던 일이었어요. 바로 2박3일중 마지막날에 첫번째날부터 잼있게 놀았죠.교관도 정하고 장기자랑두 하구 밤새서 말뚝박기하면서.. 하지만 마지막날에는 정말 잊을수 없는 일이 있었죠.
모두 잠들어 있는 새벽4시 그땐 얘들이 다 뻗어서(그이유는 2일동안 밤을샛기때문..) 잠을 자고 있었죠. 근데 갑자기 1~2반 교관이 들어와서 "야 너네들 마지막날인데 잠이나 자고있으면 어떻게 하냐? 방열쇠 다 줄테니까 모여." 저희는 졸린 눈을 비비고...뭐지뭐지?하면서 나갔어요.교관이 "야 이거 가지구 거의 안지워 지는 펜 나눠줄테니까 다른방 따고 들어가서 애들 얼굴에다가 낙서 왕창하구와!" 저희는 마지막날에 이런 기분을 만긱할수있는 사람들은 바로 1~2반이었다는거! 그것만으루두 신나서 열쇠들을 나눠 가지구 저희반(2반이였죠...) 남자 애들 방으루 사알짝~~~ 허걱 이게 웬일 입니까? 남자 애들 몇명이 깨어있는게 아닙니까~! 그래서 자초지정을 말하구 남자애들과 함께 동행하기로 하고 그방 남자애들 얼굴에다가 낙서를 하기 시작했어요.저희 반에 부회장이 간지러웠는지 자꾸 긁고 그러다가 우리가 낙서하는걸 알고 일어날려구 하자 저와 그밖에 친구들은 살금살금 빠져나와서 다른방에 가서 낙서를 하고 새벽5시쯤 되어서야 잠을 조금 자구 6시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더니 애들이 소근소근 대기 시작했습니다 "야 있잖아 나 어제 얼굴에 낙서가 되어있더라...누가 그런거지?" 하면서./...저희는 웃음을 찾느라 고생은 했지만 정말 잼있었어요...
만약 제 친구들이 이글을 읽고 그 일들을 다시 되새겨 잼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6학년2반 친구들을 영원히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전 절대 잊지 않을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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